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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화

[영화-002] 멜랑콜리아

리뷰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해서 그냥 주절주절 쓰는 것이다보니 영화에 대한 내용 누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한 스포일러일 경우, 미리 언급을 하겠지만 웬만해선 그냥 줄줄 쓸 것 같아요.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저는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두가지가 재미와 분위기입니다. 둘중 하나라도 압도적이면 정말 푹 빠져서 보는데, 이 영화는 후자에 속하겠네요. 분위기 하나는 끝장나는 영화입니다. 


멜랑콜리아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는 말하기 힘들겠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몰입감이 따라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약 5분? 10분 가량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압도적으로 사로잡으니까요.


영알못이라 이 영화에 숨겨진 수많은 요소요소들을 캐치하진 못했지만, 그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한 것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영화의 그런 요소들을 잘 캐치 못하는 저도 수많은 은유적인 표현들을 보고있으면서 정확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확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유명한 라스폰트리에 감독이지만, 저는 이 영화가 라스폰트리에 감독 작품 중 유일하게 본 영화입니다. 도그빌이나, 어둠 속의 댄서, 안티크라이스트 셋 다 한번 보고싶긴 한데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이 영화 역시 이 감독의 악명 때문에 계속 망설이다가 갑자기 땡겨서 감상했는데 흠뻑 빠졌네요. 물론 보고나면 기가 다 빨려서 두번 볼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번 다시 볼만은 하겠지만..




영화는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간에게 어쩌면 가장 행복하고 떠들썩할 결혼식인 1부와 지구의 종말을 주제로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한 2부로 되어있습니다. 


온갖 인간 개개인의 감정들이 뒤섞이는 결혼식과 가장 스케일이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지구의 종말이 전혀 다른듯 비슷하게 한 영화에 1부, 2부로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겠네요.






영화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결혼식인 1부도 2부 못지않게 우울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쩌면 대놓고 우울한 2부보다는 1부가 훨씬 우울할 수도 있겠네요. 


상황 자체가 암울하고 금방이라도 죄다 죽어버릴 것 같은 2부에 비해 1부는 모두가,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겉으로는 웃고 떠드는 상황 속에서 혼자만이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유모를 우울증에 사로잡혀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조차 그 웃고 떠들썩한 게 정말로 유쾌해보이는지 알 수가 없고, 이들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팽팽하게 아슬아슬 줄타기를 합니다. 


단순히 결혼식장에서의 해프닝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 중심에 우울, 아니 멜랑꼴리한 주인공이 존재하구요.


이 글을 쓰면서 멜랑꼴리의 정확한 뜻을 찾아봤는데 (장기적이고 흔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이네요. 딱 그게 내내 느껴집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도 이유모를 우울한 1부가 지나고나면 2부는 가관입니다. 주인공은 이제 1부 주인공의 언니로 바뀌는데 그래도 서로 갈등도 있고, 싸우기도 하는 1부에 비해 등장하는 사람들도 고작해야 네명인데다 굉장히 정적인데도 보는 내내 숨이 막혀오고 미칠 것 같거든요.



개인적으로 1부나 2부나 어느 쪽이 더하다 싶은 것 없이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갑갑하고 미칠 것 같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저항이라도 조금 해보는 다른 종말을 다룬 영화에 비해 이 영화는 암울 그 자체입니다. 


1부인 결혼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여지도 남겨두지않고 정말 끝까지 갑니다. 그저 '불안함'만 영화 내내 휩싸여 빠져나갈 수 없도록 보는 이를 붙잡습니다. 




영화가 딱 끝나고나면 공허함에 후유증이 물밀려오듯 밀려옵니다. 러닝 타임은 136분인데, 정말 길게 느껴지더라구요. 재미가 없어서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진 것이 아니라, 이상한 기분 나쁨이 전체에 흩뿌려져 있다보니 영화는 계속 보게되면서 엄청난 시간을 보낸듯한 느낌이 들어요.


'멜랑꼴리'할 때 이 영화를 보시면 정말 극한을 맛보실 수도 있겠네요.